기분이 별로다.

내가 부당해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 구조조정으로 누군가를 그만두게 만드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산다'와 비슷하게 '조합이 살아야 모두 산다'고 주장해야 하다 뭔가 계속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기분.


게다가 오늘은...

혹시 우리 내부에 누군가 정보를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면서 나의 과거를 미워하게 됐다.

편 가르고, 그는 어느 그룹인가 계산하고.

마치 정파가 뭔지 뒤를 캐는 것 처럼.

사람사는 세상은 다 이런건가 아님 내가 유독 그런 바닥에서 살아왔던 걸까.


예전엔, 항상 내(혹은 우리) 주장을 할 때 상대방은 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맞는' 것을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에는 그저 의견이 다른 우리편만 있을 뿐이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늘 듣는이의 감정을 보살펴야 한다.

이게...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인가 대체.


날 아는 사람은 알텐데... 난 저런 사람이 아니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선 감정을 살피지만 일에 있어선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때론 사적인 관계에서도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말한다.)

여지를 두지 않는 편이며 상대의 감정은 내 알 바 아니다.

난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아.

어렵다.

차라리 싸우는 편이 낫겠다.

싸우는게 지긋지긋해서 도망쳐온 나인데.

싸우지 않는 건 더 어렵다.

고작 14가구 모여있는 조합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며칠 전 술 취한 친구놈의 "아는 사람이 왜이래?"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내가 요새 뭐 하나 싶다.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난 이유가 없는 건 아니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건데 오늘이 그렇다.

 

일어난 일은 이렇다.

오늘 원래 저녁에 세희씨랑 미나를 만나기로 했었다.

언론노조에서 이래저래 정이 들었던 언니동생들.

지금은 미나만 남았지만 간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5시 50분 걸려온 남편씨 전화.

갑자기 본사에서 보자고 해서 늦을거 같다며 정말 미안하다는 얘기.

여기까지가 벌어진 일.

 

그런데... 오늘은 다른날과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다른때 같으면 "아 뭐야!!!"라며 화를 내거나 "웃겨 진짜"라며 뭔가 다른 조건을 제안했겠으나...

오늘은 갑자기 진심으로 속상했다.

그 이유가 뭘까...

 

1.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싫다.

7시반 약속이어서 7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6시가 다되서 통보받은 것이니 '계획적인' 나는 돌발 상황 자체가 싫다.

2.

저녁약속이 있을 때 마다 스스로 왠지 모를 미안함에(약속 있는게 무슨 죄라고...) 시달려서 오늘은 특별히 동태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한참 음식을 만들고 있던 상황이라 더 울컥했을지도 모르겠다.

3.

나 자체는 독립적인 인간인데,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를 기르는 처지가 됐다고 해서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 역시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가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인가?

4.

다 키운 21개월 아가 한명인데도 이런데 하나 더 낳으면 나는 과연 내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막막함도 있었을 것이다.

5.

외출이 없는 날이라면 하루 24시간 중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4~5시간 가량.

그 시간 내내 대화를 나누진 않으니 실제로는 1~2시간.

그래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기에 누군가 외부인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중요한 일인데 그게 무산된 데에 따른 좌절감 일지도.

6.

한달에 두세번이라도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것 조차 내 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니...

대체 나는 뭐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뭐... 저게 다 이유일 수도 있고...

눈물까지 뚝뚝 흘린걸 보면 그냥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다.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 보면 수잔이 임신했을때 별별 일에 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때 마다 주변사람들이 당황해하자 매번 그녀는 '호르몬 때문'이라며 안심시킨다. -_-;; 실제로 임신기간엔 감정기복이 크고 조절이 안될 때가 좀 있다.)

 

여튼 나는 저녁내내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다.

내 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뀔 수 있다니...

 

그나저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 외로움이 덜어진다는데 글 써도 하나도 안덜어지잖아!!!!

페이스북이 아니라 블로그라 그런거냐? -_-

아 무슨 소릴 지껄인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좀 나아질까 해서 썼는데 이게 뭐꼬.

이 야밤에 지안이 깨워서 "엄마 이뽀" 해달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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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 일부 같지는 않지만 꼭 함께 해야 하는 경우 최선의 방법은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다 들어주고-공감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말이 다 끝나면 상대의 말에 반박을 하지 말고 대신 솔직한 나의 '심정'을 털어 놓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논쟁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런 변화나 발전은 없다. 다만 논쟁 중 꼭 해야만 하는 한 두개만 남고, 나머지 논쟁, 그러니까 논쟁이었다기 보다는 감정이나 여타 다른 것이 '논쟁'이란 이름으로 둔갑했던 나머지 98개나 99개의 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지식채널e로 유명한 김진혁PD의 블로그에서 본 글.
참으로, 참으로 공감간다.

허나 언제 체득할 수 있을는지...
늘 싸우다보면 감정으로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후회하고...
새해에는 될까? ㅋㅋ

원문은 여기서...
http://blog.daum.net/jisike/789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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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르겠는 이런 기분.
행복이란게 있을까 하는 의문.
행복도 불행도 모든 감정이 결국 순간은 아닐런지.

'객관적'으로 난 아무일도 없고 그저그런 일상인데...
근데 이상하게도 이번 우울은 오래간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뭐가 문제일까.
애초에 문제란게 있긴 한걸까?

아마 내일 난 또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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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해지지 못하는 나를 보며...
감정의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필요하면 켰다가, 감정이 컨트롤 되지 않을때 살포시 꺼두는거다.

그러다가 생각이 더 나아가...
on/off 뿐 아니라 기능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음향콘솔처럼 필요한 것만 컸다켰다 할 수 있으며 gain과 음의 밸런스까지 조정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콘솔.

아주 기쁜 마음을 맘껏 누리고 싶을땐 다른 감정은 꺼두고 기쁜마음의 gain을 최대치로 올리고...
평소에는 무난하게 조정해주고...
누군가에게 화를 낼땐 '인정' 채널은 좀 죽여놓고...
혹은 바쁠때 특정한 사건에 대해 꺼놓는거.
그게 생각 안나면 마음의 평정도 오고 좋을텐데...
(마음의 콘솔이 아니라 기억의 콘솔이 필요한 걸까? -_-;;)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우울증 따위는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크고, 기분에 따라 컨디션이 너무도 달라지는 극단적인 나도 사라지겠지.
특정한 일에 신경끄는거...난 왜 그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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